어떤 면접
어떤 면접을 봤다.
최근 몇 년간 잘 본 면접이 있던가? 없다. 인생 전체로 범위를 넓혀봐도 기껏해야 망치지 않은 면접 몇 번이 기억날 뿐이다. 이유? 간단하다. 자기PR을 싫어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저 알량한 문구 몇 줄을 보는 것보다 여기 있는 나를 봐 주었으면 하는데. 한 눈에 사로잡기보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이해하기를 바라는데.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일 뿐이다. 수백 명이 나와 같은 양식의 지원서를 냈고, 나에게 시간을 특별히 더 쓸 당위성은 어디에도 없다.
흠흠.. 면접 얘기로 돌아오자면, 이 면접은 지난 1년간 만든 앱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설계하고, 꾸미고, 살아 움직이는 앱으로 만들었다. 그냥 연습하려고 대충 만든 앱이 아니라, 나름의 경험과 또 의지가 담겨있는 앱이라고 할 수 있다.
말했다시피 나는 면접을 잘 본 적이 없다. 하필 맨 마지막 순서였던 내 차례를 기다리며 20분을 어떻게 써야 하나, 시간은 또 왜 이리 많이 준 거야, 그냥 집에 갈래...... 면접을 3분 앞둔 사람이 하기에는 꽤 자유로운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앞 사람이 나가고, 이제는 내 차례. 정확히는 팀 발표였지만 사실상 혼자 발표했다. 나보다 이걸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스크립트를 슬쩍 보고, 뭔가를 말한다. 본 대로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5분 안에 발표하기에는 약간 많았던 슬라이드를 넘긴다. 애초에 슬라이드도 내가 만든 거라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이어지는 질문 세례. 다행히 심사위원 분들이 발표를 관심있게 들으신 듯했다. 그런데 질문이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대부분 개발할 때 한번씩 고민해봤던 주제라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그렇게 15분이 지나고.. 회의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며 느낀 감정은 아쉬움이나 무력감이 아니었다. 의구심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대답을 잘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팀원의 말로는 면접관들의 반응이 좋았고, 때로는 놀라기까지 했다고 전해주었다. 이번엔 다른 결과를 기대해도 되는 건가?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팀원들과 헤어진 후에도 줄곧 생각했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필요한 기능을 정의하고, 적절한 구현 방법을 찾고, 또 실제로 구현하는 그 모든 과정이 면접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2주 정도 준비했던 과거의 면접과 달리, 이번 면접은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하던 그 순간부터 준비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노력의 자릿수가 달랐다.
되돌아 보면 벼락치기를 거의 안 하는 편이었는데, 유독 면접을 볼 때에만 단기간에 대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학기 때보단 훨씬 여유로워졌으니, 앞으로는 slow and steady 정신으로 나아가야겠다. 물론 fast and steady가 제일 좋지만, 적어도 slow and instant가 되지는 않도록 매일 노력하자.
한눈팔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