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전업 백수 탈출기 #1

해스끼 2024. 10. 13. 21:00

2024년 8월 9일, 세 명의 젊은이들이 동대문 카페에 모여 각자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한 명은 생전 처음 보는 플랫폼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스터디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사소해 보이는 웹 사이트 에러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순된 두 가지 메시지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취업하고 싶습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진로는 취업이라고 거의 정해 놨다. 창업은 내 능력으론 절대 못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대학원 공부는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론보다는 응용을 좋아하는 편이라.

 

첫 취업 활동은 2022년 카카오였다. 생애 첫 코딩테스트를 통과했던 좋은 기억과 함께, 생애 첫 면접을 완벽하게 망쳐버린 슬픈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면접관 분들이 제발 좀 천천히 말하라고 하셨던…

 

그 다음 해에 지원했던 네이버 채용도 완벽하게 동일한 과정을 거쳐 1차면접에서 탈락했다. 사실 이 때는 최종 합격보다는 내 상황을 점검해 보겠다는 목적이 강했고, 결과적으로 가장 큰 약점 하나를 찾긴 했다.

 

자신감 부족으로 인한 의사소통 능력 저하. 쉽게 말하면 쫄아서 말 더듬는 것.

 

그렇게 내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며, 4학년 2학기 취업 시즌을 맞았다.

서류도 쉽지 않다

안드로이드 개발을 하던 사람은 서비스 기업으로 가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주로 대기업에 지원했다.

 

취준 초기에는 자기소개서 작성이 정말 어려웠다. 마지막 자기소개서가 고등학교 입학이었을 정도로 글을 통해 나를 소개해 본 경험도 없었고, 자기 PR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했다(지금도 그렇다).

 

A4용지 몇 쪽짜리 글이 아닌 진짜 내 모습을 봐줬으면 했지만, 이건 연애가 아닌 취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글감 자체는 적지 않았다. 직무와 잘 어울리는 공모전(배리어프리)도 했고,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프로젝트 경험도 있고, 개발자의 사회적 역할 같은 인문학적 생각도 어느 정도 정리해 두었다. 그러나 이것들을 ‘회사’라는 접시에 담아내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처음에는 내가 지금까지 이러이러한 일을 했으니 나를 뽑아라! 라는 식으로 작성했다. 당연히 이런 자소서로는 합격할 수 없다. 5연속 서류 탈락한 후에 지금까지 썼던 자소서를 다시 읽어봤는데, 나조차도 나를 뽑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단순 정보성 글이 아닌, 회사가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4학년 2학기 내내 글쓰기 연습만 한 셈이 됐다. 면접은 하나도 못 갔으니.

 

그래도 많이 쓰다 보면 늘긴 는다. 이 때 연습해둔 덕분에 졸업 후에는 서류에서 떨어지는 일은 별로 없었다.

고민

해가 바뀌고, 배리어프리 최종 발표와 졸업식을 마친 나는 완벽한 백수가 되었다. 유예를 할 수도 있었지만, 소속감이 생기면 스스로 안주하게 될 것 같아 일부러 졸업을 선택했다.

 

비자발적으로 늘어난 자유 시간에 비례하여, 소위 ‘쓸데없는 생각’도 급격하게 늘어났다(당시 나는 합격과 관련없는 모든 생각을 쓸데없는 생각으로 간주했다).

 

안드로이드 개발에 미래가 있나?

 

애초에 개발자라는 직업을 하고 싶긴 한가?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25년 인생에서 처음 해 보는 고민이었다.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니까 컴공과에 왔고, 앱 개발을 좋아하니까 안드로이드를 공부했다. 그러나 취업 시장에서는 ‘왜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했다.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다.

 

왜 프로그래밍을 좋아해?

왜 하필 안드로이드야?

우리가 왜 너를 뽑아야 해?

왜?

왜?

 

이 시기의 나는 대학 입학 이후로 코딩과 가장 멀어져 있었지만, 나 자신과는 가장 가까이 있었다. 전공 공부를 하며, 맹학교 근무를 하며, 프로젝트를 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불행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나도 몰랐던 마음의 한 구석을 더듬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문 너머에 내가 있었다.

 

삶의 이유를 찾자 일하고 싶은 이유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적어도 나 스스로 나를 왜 뽑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이제 남들을 설득할 시간이다.

해치웠나?

한창 내 마음 속을 파고 들어갈 때, 현실에서는 상반기 채용 시즌이 시작됐다. 학교도 졸업했겠다, 시간도 많으니 제대로 써 보기로 했는데…

 

하라는 취업은 안 하고 사고만 잔뜩 쳤다. 인성검사 시간을 까먹어서 떨어지기도 하고, 사전점검에 참여하지 않아서 코딩테스트 응시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100% 실화다. 초딩 때 1개월마다 교통카드 잃어버리던 재능이 어디 안 간다.

 

뭐… 그런 우여곡절 끝에 삼성전자 면접 응시 기회를 얻었다.

 

삼성전자는 3종류의 면접을 하루에 모두 본다. 임원면접, 직무면접, 창의면접 각각 30분 정도 보는데, 듣기로는 임원면접과 직무면접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2024년 첫 최종면접 응시였는데, 생각보다 대답을 잘 했다(고 생각했다). 임원면접에서 면접관 분들이 내가 어필하고 싶은 것 위주로 물어보셨고, 반응도 괜찮았다. 평소와 달리 말을 더듬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면접을 끝내고, 서울행 광역버스를 타며 조심스럽게 불경한 생각을 품었다.

나, 붙을지도…?

 

불경한 생각은 점차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발표 즈음에는 수원 자취방까지 알아봤을 정도로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지루한 나날 끝에, 확신이 현실로 바뀔 그날이 왔다.

되겠냐

아침에도 덥다고 느낄 만한 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6월 중순 어느 여름날, 버스정류장에서 습관처럼 채용 사이트를 열어본 나에게 몇 개의 문장이 다가왔다.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며… 면밀히 검토하였으나… 아쉽게도…

의례적인 탈락 문구가 이어졌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잠시 세상과의 연결이 끊겼다. 기사 아저씨의 빨리 타라는 목소리에 겨우 몸을 움직였지만, 자리에 앉는 것 이상의 의식적인 헹동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수많은 물음표가 트리처럼 뻗어나갔다. 어제는 수원 자취방까지 알아봤는데…

 

10년 만에 눈물이 나온 날이었다. 1년 간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오는 길이었는데, 플레이리스트의 어떤 곡 때문에...

 

음악인에게는 너무나도 슬픈 가사다. 꼭 들어보길.

소원 없는 사람

얘, 세상이 어디 맘대로 되는 줄 아니? 이제 주제를 좀 알려무나.

 

내 주제가 뭘까… 쌩신입 주제에 대기업만 노리면 주제넘는 건가?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고민을 품고 현대자동차 6월 신입에 지원했다. 여기도 떨어지면 정말 아무 데나 들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서류 합격 정도로는 어떤 기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의 나는 거의 감정 없는 인간이었다. 기껏해야 면접 또 떨어지겠네… 를 중얼거리며 면접 준비를 할 뿐이었다.


#2에서 이어집니다.